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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품종의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은 포도가 자라는 환경(떼루아)과 양조 과정에 따라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다. 다양한 개성은 지나온 시간과 선호되는 시장의 요구로 나름의 이미지를 입는데, 가을 이미지와 닮은 와인 하면 부르고뉴 피노 누아(Pinot Noir)를 꼽을 수 있다.

글_백경화

- 와인 칼럼니스트

피노 누아의 원산지는 프랑스의 부르고뉴지만, 미국의 오리건주와 뉴질랜드에서도 뛰어난 품질의 피노 누아 와인이 생산된다. 그럼에도 '가을은 부르고뉴 피노 누아'라고 각인된 이유는 다른 지역과 다른 부르고뉴만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베리류의 빨간 과실 아로마 외에 젖은 낙엽, 부식토, 습지, 발효된 볏짚 느낌 등 양지의 느낌과 대비되는 음지의 느낌이 부르고뉴 피노 누아에 있다. 미국 오리건주나 뉴질랜드에서 생산된 피노 누아와 비교하면 부르고뉴 피노 누아가 지닌 고유한 음지적 느낌이 이런 거구나 하는 감이 온다. 다른 품종에 비해 섬세한 특징을 가진 와인이기에 시음 적기의 와인을 만나기 쉽지 않고 사람마다 호불호가 크게 나타나는 와인이기도 하다.

쉽게 설명하면,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는 자극적인 맛으로 캐릭터가 분명하지만 심심한 맛의 평양냉면은 맹숭맹숭한 맛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칠레산 보르도 스타일(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블렌딩) 와인을 즐겨 마시는 이들은 프랑스 보르도 와인을 마셨을 때 뭔가 약하고 밍밍하다고 말한다. 또 그들은 부르고뉴 레드(부르고뉴 레드는 피노 누아, 부르고뉴 화이트는 샤르도네)를 마셨을 때 주스 같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입안에서 느끼는 맛의 크기 때문인데, 이를 와인의 바디감이라고 한다. 앞서 말했듯, 그 차이는 된장찌개와 평양냉면 육수의 차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강렬함의 향연

피노 누아로 만든 와인의 아로마는 주로 붉은 베리류(딸기, 크랜베리 등)다. 같은 베리류라도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에서 말하는 검은 베리류(블루베리, 카시스 등)와 비교할 때 좀 더 신선하고 덜 숙성된 느낌이며 맛이 여리고 산도는 더 높다. 두꺼운 느낌보다는 얇고 가벼운 느낌이 든다. 여기까지만 보면 음지적 느낌보다는 양지적 느낌이 더 클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소녀적 느낌을 바탕으로 부르고뉴 피노 누아는 숙성되면서 하나씩 하나씩 아로마를 더해가며 복합성을 키워간다. 보통 이것을 레이어드된 아로마라고 한다. 숙성되면서 기존 붉은 베리류의 향이 두꺼워지는 것이 아닌 전혀 다른 종류의 아로마가 한 층 한 층 쌓여간다. 붉은 베리류의 가벼움 위에 허브의 알싸함과 발효된 볏짚(소의 여물 냄새)의 구수한 냄새, 젖은 낙엽과 흙의 비릿한 냄새와 생고기의 육향이 더해진 듯 하면서도 숲에서 나는 풀과 버섯 냄새 등 수분을 더한 이미지가 완성된다. 여리고 밝은 이미지보다는 절정의 시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든 중년의 이미지가 어울린다.피노 누아의 타닌은 매우 강하다. 하지만 단번에 느껴지는 그런 강함이 아니다. 한 모금 마셨을 때는 타닌의 강함을 알 수 없다. 과일 주스 같은 가벼운 목 넘김이 끝난 뒤 다양한 아로마가 느껴지며, 그 후 두 번째 한 모금이 연결될 즈음 입안이 뻣뻣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별것 없는 듯 가볍게 다가오지만, 시나브로 잇몸을 조여 오는 타닌은 얇고 강하다. 이 정도가 되면 피노 누아를 마신 이들은 탄성이 터진다. '세다!'

피노 누아를 제대로 음미하는 방법

피노 누아의 맞춤 음식으로는 대부분의 레드 와인과 마찬가지로 소고기를 꼽는다. 그러나 조리법은 차별화를 두어야 한다. 양념을 최소화하고, 익힘 정도는 미디엄 레어 이상보다는 그 이하가 낫다. 섬세한 피노 누아의 아로마는 고기의 육향이 살아 있는 조리법이 어울린다. 하지만 가을은 피노 누아라는 미각 공식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사철 먹을 수 있는 소고기로는 많이 부족하다. 가을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식자재와 피노 누아로 완성한 식탁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버섯이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송이다. 부르고뉴 중에서도 섬세하고 여성스럽기 그지없는 샹볼뮈지니(Chambolle-Musigny)와 송이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할 정도의 싱그러운 숲 향이 느껴진다.

올가을에는 습한 흙냄새와 묵은 낙엽 냄새를 가득 담은 버섯과 피노 누아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때를 맞이하겠구나 하는 소망으로 더위를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쉽게 물러나지 않는 끈질긴 더위의 몽니가 끝날 즈음 저녁 바람이 선선해지면 습습한 향이 잔뜩 묻어 있는 버섯과 맑은 외양을 지닌 피노 누아를 즐길 상상에 행복하다. 송이든 표고든 흙만 털어내고 버섯을 결대로 죽죽 찢어 작은 조각 하나를 입안에 넣어 잘근잘근 씹어 입안을 버섯 향으로 가득 채우고, 뒤이어 맑은 피노 누아 한 모금의 아로마를 즐기면서 농익은 가을을 풍성하게 즐기고 싶다. 그러고는 소고기를 살짝 익힌 뒤 소금만 뿌려 감칠맛을 더한 버섯과 함께 풍미를 키우며 슬슬 오르는 타닌과 알코올이 피노 누아 와인의 가을 이미지를 절정으로 이끌 것이다.

흔히 부르고뉴 피노 누아의 맛에 한번 빠지면 집까지 팔게 된다고들 말한다. 우스갯소리가 아닌 것이, 가볍게 살랑거리는 몸체에 성격이 다른 여러 아로마를 품고 있으면서도 짜릿하게 살아 있는 산도와 부드럽게 다가와 강하게 조이는 타닌의 조화를 음미하고 나면 와인의 기준은 좋은 피노 누아가 되기 십상이다. 피노 누아의 가치를 논하면서 굳이 고가의 로마네 콩티를 얘기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허세처럼 보일 뿐이다. 단지 오감으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피노 누아의 매력은 차고 넘친다.

치열하게 더위를 이겨낸 뒤 좀 더 여유롭게 낭만을 즐기고 싶은 계절, 가을이다. 가을날의 낭만을 더해줄 와인을 찾고 있다면 단연 피노 누아고, 그 밖의 다른 와인은 찾기 힘들다. 평소 밥상 와인에서 일탈해 입안의 사치를 누리고 싶다면 좋은 피노 누아 한 병을 가을맞이로 준비해보자.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풍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건 어떨까.

The taste and characteristic of wine depends on the type of grapes, the environment (terroir) and winemaking process. Wine develops its identity with history and the needs of a market. Wine that pairs brilliantly with fall can be said to be the Bourgogne Pinot Noir. The origin of Pinot Noir is Bourgogne, France, but Oregon, US, and New Zealand also has high quality Pinot Noir wine products. However, the reason why fall is paired well with Bourgogne Pinot Noir is due to the fact that Bourgogne has its own specific image differentiated from other locations. Leafs colored with berry-based red fruit aroma, mold, wetland, fermented rice straws and other shady areas exist in Bourgogne Pinot Noir. Compared with the Pinot Noir produced in Oregon, US or New Zealand, the Bourgogne Pinot Noir has a specific, unique taste. As it is delicate wine compared to others, it is not easy to taste the wine at the right timing and appreciations of the wine range wid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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