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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금희 원장과 딸(취재를 마치고 보호작업장에 잠시 들러 찍은 사진)

사회복지법인 따뜻한 동행은 지난 2010년 설립 이후 공간복지 지원 사업, 장애인 고용창출 사업, 첨단보조기구 지원 사업, 멘토링 사업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쳐나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제37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복지시설 및 장애인 가정 공간 복지 지원을 위한 스토리펀딩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따뜻한 동행의 스토리펀딩은 《오늘을 부탁해》 저자이자 공공예술 프로젝트 ‘하루를 쓰다’의 최성문 작가가 직접 장애인 복지시설을 방문한 내용으로 구성된 진솔한 이야기를 다음카카오 스토리펀딩 플랫폼에 약 2개월 동안 총 7회에 걸쳐 연재를 진행한다. 첫 번째 시리즈로는 대전 장애인 단기 거주시설 ‘예솜동산’의 이야기이며, 재능 기부로 완성된 동영상도 함께 소개한다.

슬픔을 안아준 기쁨의 집

글·그림 / 최성문

“슬픔이 슬픔을 눈물이 눈물을
아픔이 아픔을 안아줄 수 있죠.
힘들게 힘들게 내 상처 드러내 보일 때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들
그 맑은 눈빛과 따뜻한 웃음이 있는 한
아직도 세상은 살아볼 만한 거죠.”

예솜동산의 식사 시간(ⓒ 최성문)

대전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예솜동산’으로 가는 내내 양희은의 노래 ‘그대가 있음에’가 생각났다. 장애인 단기 거주시설 ‘예솜동산’은 아픔이 아픔을 안아주며 새로운 가족 공동체로 살아가는 이들의 보금자리다. 사람들은 ‘예솜동산’의 한금희 원장에게 장애 아이들을 믿고 맡긴다. 한번은 우울증인 한 엄마가 장애인으로 태어난 아이에게 농약을 먹이고 자살했는데, 아이만 목숨을 건졌다. 병원에서 급히 한금희 원장을 찾았고 사연을 들은 그녀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처음에는 좁은 집에서 장애 아이들과 생활하다 2012년 보다 넓은 지금의 보금자리로 옮겨 현재 11명의 장애인과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부실공사 탓에 바닥은 점점 꺼져가고 방수 시설에도 문제가 생겨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위험 수위까지 왔다.

11명의 장애인과 한금희 원장 가족이 살고 있는 예솜동산

같은 반, 짝꿍으로 초등학교 6년을 함께 지낸 다운증후군 누나와 동생

한금희 원장이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껴안으려는 특별한 마음에는 이유가 있다. 30대 중반에 결혼한 그녀가 첫딸을 낳았는데, 다운증후군이었다. 심장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어리고 약해서 한 번에 수술할 수 없었다. 심장 전문 병원을 여러 군데 다녔고, 3회에 걸친 수술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녀는 딸이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장애인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정상이라 우기며 한 살 늦게 특수 학급이 없는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하지만 아이를 홀로 학교에 보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딸보다 두 살 아래인 아들을 조기 입학시켰다. 다운증후군인 누나와 비장애인인 남동생은 같은 반, 같은 짝으로 초등학교 6년을 보냈다. 한 원장은 아들이 누나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해 아들은 앞에서 1등, 딸은 뒤에서 1등을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대학생인 아들에게 누나와 초등학교 6년을 함께 보낼 때 힘들지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학년 때는 친구들이 누나랑 놀아주었는데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편견을 갖더라고요. 한번은 사스라는 병이 유행했는데, 전염병이고 사람이 죽는다고 뉴스에서 많이 떠들었어요. 그때 누나가 콧물을 많이 흘렸는데, 그걸 보고 아이들이 누나를 사스에 걸렸다고 놀렸어요. 등굣길과 하굣길, 쉬는 시간, 수업 시간 내내 누나랑 같이 있으니 친구들과 놀지 못할 때 참 힘들었죠. 그런데 누나는 저를 늘 첫 번째로 생각해줬어요. 맛있는 거나 좋은 게 있으면 항상 저를 불렀죠. 사실 제가 누나를 챙겼다기보다 누나가 저에게 해준 게 더 많아요.”

장애인들과 언제부터 함께 살았는지 궁금했다.

“초등학교 때 집에서 방학 프로그램을 해서 장애 아이들로 늘 시끌벅적했어요. 그러다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이 생겼죠. 한번은 제 방에서 같이 살던 아이가 틱 장애가 있었는데 종일 손뼉을 치고 입으로 소리를 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아버지 방에서 자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2층에 제 방이 따로 있어서 장애인들과 함께 방을 쓰지 않지만 늘 신경은 쓰이죠. 그동안 나만의 시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어요. 시간과 공간을 모두 공유하고 살아가는 부모님이 존경스러워요.”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 게 있는지 묻자 환하게 웃는다.

“예솜동산이 얼른 자리를 잡아 아버지, 어머니, 누나, 저 이렇게 네 명만 따로 집을 구해 살아보고 싶어요. 아침에 다 같이 늦잠도 자고, 저녁에는 텔레비전 보면서 남들처럼 치킨도 시켜 먹고, 가끔은 여행도 가고 외식도 하면서 가족끼리 사는 즐거움을 누려보고 싶어요.”

소박한 꿈이다. 이 평범한 꿈을 이뤄보지 못한 가족의 고귀한 희생이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장애 아이들의 부모가 되다

한 원장은 딸의 교육을 위해 심리치료, 특수아치료, 사회복지 등 장애 관련 공부를 했고, 자격증도 땄다. 한 원장의 열심과 진정성은 주변 사람들에게 그녀에게 장애 아이를 맡기면 잘 키워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녀는 자신과 인연이 닿은 장애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었고, 지금은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두고 큰살림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그녀를 지지하고 조용히 내조하는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원장 부부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이끌며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다. 아침 6시부터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이고 특수학교와 주간 보호시설로 시간 맞춰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을 먹이고 생활 훈련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불 개는 것만 2년 이상 훈련시켜야 할 수 있다고 한다. 세면대 거울에 나란히 이름을 써서 걸어둔 칫솔을 보며 반복 훈련은 끈기와 인내가 없으면 가르치기 어려운 일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예솜동산 식구들의 칫솔
부실시공으로 온통 갈라진 바닥 (걸을때마다 장판 틈으로 하얀 시멘트가루가 올라옴)

장애로 몸이 약해 자주 아픈 아이들이 잘 먹고 잘 잘 때 가장 예쁘다는 한 원장의 말에서 엄마의 사랑이 느껴졌다. 그녀는 아이들이 마음껏 바닥에서 구르고 뛰어놀더라도 안전하기를, 또 화장실과 샤워실 등 낙후된 시설도 보완해 아이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한 원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평소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을 좋아한다며 잔잔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난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Ever since social welfare foundation, Walk Together, was established in 2010, space welfare support project, employment of the disabled project, high-tech assistant equipment project, mentoring project, and other various projects have been carried out. In light of the 37th Handicapped day this year, story funding project is currently in progress to support facilities and housing spaces for the disab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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